드론은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
드론 산업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알아보자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내는 프로펠러 소리가 경쾌하다. 땅에 거의 붙을 것처럼 20cm높이에서 날다가 150m 상공으로 훌쩍 날아오르는 모습이 상당히 날렵해 보인다.이런 민첩함은 지진을 예측하거나 택배 서비스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응급처치가 필요한 사람들에겐 의사가 되어주고 양 떼를 모는 양치기 역햘도 가뿐하게 소화할 수 있다. 최근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는 이것은 바로 무인 항공기 ‘드론(drone)’이다. 과학, 군사, 마케팅,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미디어등 분야를 가리지않고 발휘하는 다재다능함이 드론 열풍의 원동력이자 핵심이다. 활용 범위가 광범위한 만큼 향후 산업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포텐셜 또한 어마무시하다.
– 최초의 드론
비행 시 모터에서 나는 소리가 마치 벌이 날아다닐 때 윙윙거리는 소리와 유사해 ‘드론’이라는 명칭이 붙은 무인 항공기는 사실 100년 정도의 역사가 있다. 드론의 시작은 많이 알고 있듯이 무기였다.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는 1900년대 초반 사람이 타지 않는 무인 항공기 이론을 제시했다. 본인이 처음 고안한 레이더와 무선 통신 원리를 이용해, 원격조종이 가능한 무인 항공기를 만들어 조종사의 인명 피해를 줄이겠다는 것이 테슬라의 생각이었다.
미국은 테슬라의 연구를 바탕으로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8년, 80km 정도를 날아가 날개를 분리해 동체 폭탄으로 목표물을 타격하는 무인 항공기 케터링 버그(kettering Bug)를 개발했다. 케터링 버그는 기체를 나무로 제작한 일회용 비행기였는데 성공률이 낮아 연구를 거듭하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됐다. 비록 케터링 버그는 실전에서 활용되지 못했지만, 테슬라의 무인 항공기 개념을 바탕으로 만든 정찰기는 전쟁 중 자신의 역할을 부단히 소화해냈다. 한 예로, 1915년 영국 육군항공대는 정찰기를 이용해 독일군 진영을 촬영했다. 1,500매가 넘는 촬영사진을 토대로 철도 상황을 파악하고 전략 수행에 활용한 것이다. 이후 무인 항공기를 이용한 정찰 시스템은 진화하기 시작한다.
– 드론과 마릴린 먼로
드론과 인연이 있는 유명인은 테슬라 외에 두 사람 더 있다. 1939년 세계 최초의 대량생산형 무인 항공기인 라디오플레인 OQ-2(Radioplane OQ-2)가 개발됐다. 당시 조립 공장에서 OQ-2에 페인트칠을 하던 노마진 모텐슨이란 여성이 한 사진작가의 눈에 띄었다. 그 사진이 잡지에 실리며 그녀는 훗날 유명 스타가 되었는데, 그 여자가 바로 한 시대를 풍미한 마릴린 먼로다. 다른 한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미 해군의 엔빌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다. 엔빌 프로젝트란 폭격기에 폭탄을 가득 채워 이륙한 뒤 조종사가 낙하산으로 탈출하면 무인 비행 후 목표 지점에 충동한다는 프로젝트이다. 그런데 실험기가 독일을 향해 날아가는 도중 폭탄이 일찍 터지는 바람에 도버해협 상공에서 조종사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다. 그 조종사가 바로 존 F.케네디 대통령의 형 조셉P.케네디였다. 케네디의 부친은 대통령 감으로 존F.케네디보다 조셉P.케네디를 염두에 뒀던 만큼, 불미스러운 드론 사고만 아니었다면 미국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일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 오사마 빈 라덴을 수색한 드론
무인 항공기를 이용한 조사나 정찰 활동은 그 뒤에도 군사전략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73년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 발발한 욤 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무인기 IMI 마스티프로 인적 피해를 크게 줄이는 데 성공하고 IAI 스카우트를 투입해 성과를 냈다. 그리고 이스라엘 IAI와 미국AAI사가 합작 개발한 무인 정찰기 RQ-2파이오니아는 1986년부터 이스라엘군과 미군 등에 실전 배치되었다. 1988년, 이스라엘 이민자 출신이자 LSI소속인 에이브러햄 카렌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자신의 집 차고에서 Gnat-750개발에 성공한다. 그는 이스라엘군 항공기 설계를 담당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미군의 무인 항공기는 몇 시간밖에 비행할 수 없었는데, 카렌이 개발한 Gnat-750은 50시간 이상 연속 비행에 성공해 군 관계자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1992년 발발한 보스니아 전쟁 당시 CIA는 Gnat-750 2대를 500만 달러에 구입해 정찰 활동에 활용했다. 그러다 1994년 1월 7일 미 국방부 소속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은 LSI를 인수한 제너럴 아토믹스와 Gnat-750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기체 개발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에 따라 Gnat-750보다 크면서도 안정적인 비행이 가능하고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는 기체 개발이 진행됐다. 6개월 뒤 RQ-1 프레데터 1세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RQ-1 프레데터는 1995년부터 운용되기 시작해 2000년 아프가니스탄전에 투입되었고 9.11테러 주모자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 수색 임무를 맡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RQ-1프레데터에 탑재된 장비는 정찰용 카메라가 전부였다. 그런데 2000년 12월부터 미군은 국방부 승인을 얻어 대전차 미사일인 헬파이어 등의 무기를 탑재하기 시작한다.
드론은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가
– 군사용에서 민간용으로 확산
드론에 의한 군사작전 증가는 기존과 크게 바뀐 전투 스타일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에는 피아식별이 손쉬웠다. 하지만 9.11테러 이후 일반인과 구별할 수 없는 테러리스트가 늘고, 위험 활동은 일상생활 속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 작전 수행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바로 드론이다. 적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장시간 안전하게 원격조종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살려 용의자를 식별하는데 도움이 된다. 드론은 사람이 직접 가지 못하는 곳에서 사람 대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명확한 장점이 있다. 최근에는 IT 기술의 발전과 함께 드론에 대한 일반인 및 기업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이 취미용으로 드론을 구입해 이용하는 일이 증가하고 기업들도 홍보나 배송등의 업무에 드론을 일부 활용하려 계획중이다. 아마존은 상품배송에 드론을 이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페이스북은 드론으로 상공에서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 홍보 활동에 도입하거나 아프리카의 동물 밀렵 감시에 투입하기도 하며 미개발 지역 의료 활동에 활용할 수 있다. 무인 항공기 제조업체인 3D로보틱스의 CEO 크리스 앤더슨은 이런 상황을 빗대어 “드론의 시대에 돌입했다”라 말한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내 35개 주에서 드론 이용에 제한을 두고 있고 10개 주에서는 이미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드론의 군사적 활용에 대해서도 미국 내 조사에선 50% 이상의 국민이 드론 공격을 지지하는 반면 미국 이외의 국가에선 반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많다는 결과도 있다. 드론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지만 드론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게 나뉘는 만큼 앞으로 여론이나 이에 따른 제도적 장치가 어떻게 변화할지 관심이 모아진다.